당홍계
고구려 때 우리나라에 동래한 홍천하 선생의 후예로 전해집니다.
- 중시조
- 태사공 홍은열
- 계통
- 당나라에서 동래한 귀화 계통
- 분파
- 16개 파
HISTORY OF NAMYANG HONG
천년의 뿌리와 선조의 정신을 후손에게 이어갑니다.
OUR ROOTS AND HERITAGE
유구한 세월 속에서 이어져 온 남양홍씨의 뿌리와
선조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소개합니다.
천년의 역사
하나 되는 종친
NAMYANG HONG CLAN
남양홍씨는 고려시대 최고의 명문갑족으로 이름을 높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문과 급제자와 학자, 충신을 배출한 대표적인 명문가문입니다.
우리나라 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86년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277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2000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우리나라에 286개의 성과 4,179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남양홍씨는 약 41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당홍계가 약 38만 명, 토홍계가 약 3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남양홍씨는 고려시대 최고의 명문갑족으로 평가받았으며, 조선시대에는 330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홍씨의 시원은 중국 고대의 고시씨와 염제신농씨, 공공씨와 공씨 계통에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약 3천2백 년 전 공(共)에 삼수변을 더해 홍(洪)이라는 성으로 개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시조 학사공 홍천하 선생은 홍보를 시조로 하고 돈황을 본관으로 한 돈황홍씨의 후손으로, 당나라 강남 휘주 명문가 출신 홍수의 아들이며 당나라의 학사였습니다.
덕산 촌주는 강남에서 태어나 요동을 거쳐 백모를 쓰고 처음 가셨네.
목은 이색, 《목은시》 당성인
목은 이색 선생의 기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은 남양홍씨의 선시조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동래했다는 전승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약 1,400년 전 당나라 정관 연간인 642년에서 643년경, 고구려 영류왕은 국민에게 예의와 법도를 가르치기 위해 당나라에 덕예문학의 학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 태종은 홍학사를 수반으로 하는 재자 8인을 고구려에 파견했습니다. 이 가운데 홍학사가 남양홍씨의 선시조인 홍천하 선생입니다.
홍천하 선생이 배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일대인 은수포이며, 이후 당성에 정착하였습니다.
홍학사는 당나라의 문물과 유학, 예악시서 등 선진문화를 전수하였으며, 고구려와 신라에서 높은 예우를 받았습니다. 신라에서는 덕산촌주, 당성백, 태자태부 등으로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신라의 왕들과 김유신, 강수, 설총 등의 인물들이 홍학사의 학문과 덕망을 높이 평가하고 스승으로 섬겼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선시조 학사공 홍천하 선생부터 이어지는 선계 10세를 가문에서는 홍씨선계십세보라 하여 높이 모시고 있습니다.
남양홍씨는 같은 성과 본관을 사용하지만 계보상 당홍과 토홍의 두 계통으로 구분됩니다.
고구려 때 우리나라에 동래한 홍천하 선생의 후예로 전해집니다.
고려 고종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 선생을 시조로 모시는 계통입니다.
당홍과 토홍의 관계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두 집안은 서로 다른 계보를 유지하면서도 같은 성과 본관을 사용하는 종씨로 화합하며 지내왔습니다.
당홍계의 중시조 홍은열 선생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홍천하 선생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전합니다. 초명은 유, 자는 자술, 후에 몽량이라 하였으며 호는 복룡이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삼한통일과 고려 창업에 크게 공헌하여 은열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정일품 삼중대광태사에 올랐고 시호는 충정공입니다.
태조 왕건이 홍은열 선생에게 내린 공신호
남양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과 화성시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입니다.
고려 충선왕 2년인 1310년 당성 지역이 남양부로 개칭되면서 당성홍씨도 남양홍씨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남양이라는 본관은 중국의 남양이 아니라 현재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 일원을 가리킵니다. 화성 지역에는 현재도 당성고지가 남아 있어 본관의 역사적 근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